해외 환자 수가 가이드라인 작업, ‘수면 위로’

국제의료협회 '수가작업반' 가동 목전

해 외 환자에게 적용할 수가에 관한 가이드라인 설정의 필요성을 놓고 찬반 논란이 분분한 가운데, 가이드라인 제정을 위한 사전 작업이 민간 차원에서는 이미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국제의료협회는 의료정책분과위원회를 신설하고 약 20개 질환별로 수가작업에 대해 논의를 벌일 예정이다. 글로벌의료관광협회도 성형, 한방 등 주요 시술별로 수가 가이드라인을 세운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가이드라인 제정에 앞서 국내외 병원의 진료 수가를 동등하게 비교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다. 결국 진흥원과 관광공사가 추진하고 있는 국내외 병원의 진료 수가 비교분석 작업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뤄져야 민간차원의 수가 가이드라인 작업도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해외환자가 앞으로 계속 늘어나고 국내 병원들이 외국 경쟁병원들과 해외환자 유치를 놓고 경쟁하게 될 때를 대비해서라도 수가 가이드라인 작업에 대한 논의는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 대세다.

국내 의료관광 시장 기지개

해외 환자의 유인 알선 행위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 2년차를 맞이하면서 국내 의료관광시장은 기지개를 펴고 있다. 지난 5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병원을 찾은 해외 환자는 6만201명으로 2008년 대비 123% 증가했다. 해외 환자가 쓰고 간 진료비는 총 547억원에 달하며 입원환자의 경우 국내 환자의 평균진료비 217만원의 3배에 이르는 656만원을 평균적으로 지출했다.

하지만 복지부 발표 이후 대한상공회의소가 461개 병의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지난 1년 동안 의료관광 분야에서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응답이 무려 93.9%에 달했다.

가장 큰 이유로는 해외 환자들의 대형병원 쏠림 현상과 마케팅 및 커뮤니케이션 능력 부족 등이 꼽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또 다른 이유로 외국 경쟁병원들의 가격 조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한 해외 환자 진료 수가 기준도 없는 등 의료관광산업을 지원하는 인프라가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실제로 그동안 국내 병원들은 해외 환자의 진료 수가를 책정하는 데 있어 참고할만한 자료가 부족해 벙어리 냉가슴만 앓아왔다. 외국 병원들의 해외 환자 진료 수가를 모르는 상황에서 내국인 가격의 2~3배 정도로 어림잡아 책정하다보니 환자 진료를 의뢰받고 적정 비용을 산출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또한 국내 병원이 요구한 진료비 청구액이 국제적인 수가 기준과 비교해 터무니없이 높거나 낮은 가격일 경우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졌다. 가격이 너무 싸면 서비스의 질을 의심받을 수 있고, 반대로 너무 비싸면 고객들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환자 진료 수가 어떻게 정하나?

그렇다면 국내 병원들의 해외 환자 진료 수가 산정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
해외 환자(혹은 에이전시)가 진료비 견적을 문의했을 때 병원은 해당 진료과 의사에게 시술 방법 등에 대해 소견을 묻고 원무과와 협의해 적정한 수가를 낸다. 질환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내국인 수가의 1.2배부터 3배까지 병원마다 정확한 원가분석 없이 일률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경희대 의료경영학부 정기택 교수는 “병원들은 해외 환자를 대상으로 가격설정 전략을 짤 때 포지셔닝, 목표수익률은 물론 나아가 비즈니스 포트폴리오까지 고려해야 한다”며 “하지만 지금까지 환자수 늘리기에 급급하다 보니 합리적인 수가 산정이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행위별수가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 환자 시술견적을 낼 때 반드시 의료공급자의 서비스 행위는 물론 제공된 상품 하나하나를 가격으로 환산해야 한다.

한 유치업체의 경우 시술견적서에 수술비, 입원료, 검사비용, 약제비, 통역비 등 12가지 체크리스트를 명시해 놓고 최종 진료비를 결정하도록 병원에 요청하고 있다. 이를 두고 해외 환자 수가의 경우 포괄수가제(DRG) 개념의 수가 제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가격 인프라 없어 시행착오

국내 병원의 해외 환자 진료 수가가 가격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동일한 질환, 동일한 시술을 놓고 국내외 수가를 비교한 자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국내 병원들은 관련 자료를 구하기 어려울뿐더러 갖고 있는 정보마저도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국내 병원의 대외협력팀 관계자들은 국내외 병원의 진료 수가에 대한 체계적인 자료가 부족함에 따라 해외 환자 진료 수가를 명확히 산정하지 못해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고 털어놨다.

실례로 A병원의 경우 건강검진을 문의한 동남아시아 환자에게 국내 시장가격이 40~50만원에 형성돼 있는 것을 참고해 50~60만원 정도로 제안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건강검진이 체계적으로 도입되지 않은 태국, 싱가포르 등에서는 옵션 검사를 추가해 한국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을 받고 있었다.

B병원은 싱가포르 에이전시로부터 진찰료가 너무 싸다는 지적을 받았다. 해외 환자 수가 기준이 없어서 국내 수가의 3배로 정했는데 그들이 받고 있는 가격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아 의사의 숙련도를 의심 받기도 했다.

C 병원은 러시아 에이전시로부터 싱가포르 래플즈병원에 예약한 환자가 한국에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 사정이 생겼으니 급히 견적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접한 적이 있다. 경쟁병원의 수가 정보가 없었고 시간도 촉박해 싱가포르와 태국 병원에 환자 이름만 바꿔 견적을 의뢰한 다음, 다음날 받은 견적을 토대로 새로운 수가를 책정해 환자 유치에 성공하기도 했다.

외국병원 수가 조사 제대로 되고 있나?

그렇다면 해외 환자 진료 수가를 산정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자료로 꼽히고 있는 외국병원 수가는 누가 어떻게 조사하고 있는 걸까?

외국 병원 수가 조사 작업을 먼저 시작한 기관은 한국관광공사이다. 지난해 7월 청심국제병원 및 전문 컨설팅사와 공동으로 ‘의료관광 실무 매뉴얼’을 펴낸 것.

매뉴얼 내용에는 주요 의료관광 국가의 병원이 해외 환자에 적용하고 있는 진료 수가 통계가 포함됐다. 주로 종합건강검진 항목과 진단검사(MRI, CT, 초음파 등) 위주로 조사됐다. 주요 시술의 경우 국내 수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 기준으로 9개 질병을 뽑아 태국과 싱가포르 병원의 수가와 비교했다.

한국관광공사 의료관광센터 임형택 차장은 “국내 병원들이 진료 수가를 정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만들었다”며 “해외 환자 유치 실적이 있는 50여개 병원에 책자를 배포했으며 오는 7월에는 피부, 성형시술 등의 항목을 추가해 업그레이드판을 내놓을 예정이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루틴한 검사 위주로 수가 조사를 진행하는 반면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중증질환을 중심으로 수가 조사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진흥원은 보건복지부로부터 지난해 7월 예산을 배정 받아 10월에 외국 병원 수가 조사에 관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러시아, 미국, 중국 병원을 대상으로 주요 20여개 중증질환에 대한 수가를 조사했고, 현재  데이터 정리 작업을 진행 중이다. 연구 결과 발표는 오는 6월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진흥원 국제의료정책팀 한동우 책임연구원은 “이번 연구용역에서는 국내 병원들이 최소한 받아야 하는 가격하한선을 분석하는 데 초점을 뒀다”며 “보완 작업이 더 필요해 결과 발표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캐나다와 일본 병원의 수가 조사도 올해 안에 시작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며 “이번 연구결과는 진흥원이 창간하는 격월간 매체를 통해 순차적으로 알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지난해 국내 병원을 찾은 의료관광객 6만 여명의 진료 수가를 집계해 외국 병원 수가와 교차분석도 시도할 예정이다. 이 분석을 토대로 국내 병원들의 해외 환자 적정수가를 산출해 국내 병의원들의 수가를 정하는 참고 자료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민간에서도 가이드라인 준비

진흥원의 외국 병원 수가 조사 작업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민간차원에서 가이드라인 설정을 위한 사전작업이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국내 대형병원 및 전문병원 등 40여개 회원사로 구성된 국제의료협회(회장 성상철)는 올해 초 이사회에서 해외 환자 수가 기준에 대해 나름대로 방향을 세우고 덤핑 방지를 위한 자정 노력을 하자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바 있다.

지난 5월 열린 이사회에서는 의료정책분과위원회를 신설하고 분과위원장에 서울성모병원장과 고대안암병원장을 선출해 수가 기준을 정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했다. 오는 6월 둘째주 이사회를 열어 '수가작업반' 가동을 위한 밑그림을 그린다는 방침이다.

국제의료협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진흥원 장경원 글로벌헬스케어센터장은 “대형병원들을 중심으로 가격하한선을 정하자는 데 동의하고, 20개 주요 질환별로 수가를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려고 한다”며 “지나치게 저가로 흐르는 것을 막고 경쟁국가 수가를 고려해 결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 어 “하지만 병원들이 수가 자료 공개를 꺼리는 것은 물론 행위별수가제 안에서 수가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다”며 “가이드라인을 정한다 해도 이를 공개하는 것은 찬반 논란이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개원의 800여명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글로벌의료관광협회(회장 양우진)도 민간차원의 해외 환자 수가 기준 정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협회는 덤핑을 방지하고 국내 의료관광상품이 해외에서 공신력을 얻기 위해 수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양우진 회장은 “의료관광상품은 비급여 수가를 적용하고 있는 진료과가 대부분이어서 복지부가 시행하고 있는 비급여 고지 의무화에 따라 병의원 홈페이지나 리플릿을 원내에 비치해 가격을 고지해야 한다. 이 규제가 오히려 덤핑을 부추기고 있고 가격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에 “개원의들로부터 미용, 성형, 한방 등 5가지 분야의 대표적인 시술 상품을 중심으로 희망소비자가격을 조사해 적정한 수가 가이드라인을 만들려고 한다”며 “적정 수가는 내국인 대비 130%로 보고 있으며 협회에서 이 가이드라인을 인증해 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가격하한선 필요

하지만 해외 환자 진료 수가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자는 의견에 대해 찬반 논란은 팽팽하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 반대하는 입장이다.

가이드라인 찬성론자는 먼저 가격하한선을 정립해 시장교란 행위를 방지하는 순기능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시장가격이 어느 정도 형성돼 있는 건강검진이나 성형시술의 수가의 경우 국내 병의원간 출혈경쟁이 끊이질 않고 있어 과당경쟁을 예방하고 시장 질서를 잘 지킬 수 있는 가이드라인 확립이 필요하다는 것.

경희대동서신의학병원 이형래 교류협력본부장은 “주로 교포들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이나 성형시술 등을 여행상품에 끼워팔기 식으로 덤핑하는 행위로 인해 결국 의료관광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다”며 “헐값에 팔면 팔수록 국내 의료관광 시장은 레드오션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적정한 가격 범위가 정해지면 해외 환자를 유치하려는 병원들에게는 귀중한 정보가 될 수 있다.
진흥원 장경원 센터장은 가이드라인 제공으로 인해 국제의료협회 회원 병원들 뿐 아니라 다른 해외 환자 유치 병원들이 가격을 포지셔닝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또 수도권에 위치한 대형병원과 견줄 수 있는 의료기술 수준을 갖추고 있는 지방중소병원에게로 유치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전문병원도 이 가격 기준에 맞춰 특화된 의료기술에 상응하는 적정한 가격대를 설정할 수 있다. 국내 의료서비스의 신뢰도와 투명성을 높이는 데 수가 가이드라인이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유치업체 한 관계자는 “가격이 경쟁력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에 적정한 수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는 것은 투명성 제고의 일환으로 보면 된다”며 “이를 토대로 차별화된 의료기술과 서비스에 따라 가격을 조절하는 전략을 펼칠 수 있다. 결국 해외 환자들의 선택권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수가 기준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 희대 의료경영학부 정기택 교수는 “최고가격제가 아닌 최저가격제를 지향하는 수가 기준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가이드라인 설정이) 의료관광산업이 레드오션으로 빠지는 오류를 막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부작용 우려도 만만찮아

가이드라인을 정하게 되면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가이드라인에 비추어 볼 때 동일한 질환의 진료비가 의료기관마다 천차만별일 경우 가격변동이 심하다는 오해를 살 뿐 아니라 이를 입원비와 수술비 등이 크게 차이가 나는 국내 병원의 현실을 해외 환자에게 이해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국내 수가정보가 해외에 유출되어 가격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높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싱가포르 병원들은 얼마 전 한국 병원들의 수가를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가격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일부 질환에 한해 20~30% 가격을 낮추기도 했다.

진흥원 장경원 센터장은 “어디까지나 가이드라인을 정한다는 것은 외국 병원과 똑같은 기준 에서 정해져야지 잘못하면 경쟁병원의 덤핑전략에 휘말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수가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국내 병원들끼리 가격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대 한병원협회 이송 정책이사는 “성형시술이나 건강검진 등 시장가격이 형성돼 있는 의료서비스의 경우 가이드라인이 악용돼 출혈경쟁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며 “해외 환자 진료 수가도 시장주의 원리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외 환자 수가는 내국인 대비 최소 140% 이상을 책정하되 해외 환자를 위한 의료서비스의 특성상 부대비용을 추가해 수가를 산정하면 된다”고 제안했다.

외국 병원들은 이렇게

그렇다면 대부분 영리병원들이 의료관광에 앞장서고 있는 외국 병원들은 해외 환자를 위한 진료 수가를 어떻게 결정하고 있을까?

태국 범룽랏병원은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진료비를 공개하고 있다. 이들은 연간 진료비를 시술건수로 나눠 질환별로 평균 가격대를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CABG의 경우 LOW(22,963달러), MEDIAN(26,425달러), HIGH(35,068달러)로 비용을 산정했다. 단, 22,963달러~35,068달러 사이의 가격을 지불하고 진료를 받은 환자가 전체의 50%, 22,963달러 이하 25%, 35,068달러 이상 25%로 배분했다.

싱 가포르 파크웨이그룹병원은 홈페이지에 해외 환자를 대상으로 질환별로 약 40가지에 이르는 패키지 가격을 제공하고 있다. CABG의 경우 입원기간 7일, 4인실 기준으로 16,500달러로 책정돼 있다.

반면 국내 병원의 경우 해외 환자 진료 수가를 절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미국 MTA(Medical Tourism Association) 홈페이지에 조사 시기 및 기준이 불분명한 10여 가지 시술의 가격만 올려져 있을 뿐이다.

한국관광공사 임형택 차장은 “외국에서 우리나라 의료서비스 가격 정보를 전혀 접할 수 없기 때문에 국내 의료관광상품의 이미지가 실추될 우려도 있다”며 “최소한의 가격 범위를 정하는 문제는 신뢰도와 투명성의 관점에서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복지부, 시장교란 행위는 제재할 것